back
05 / 06

#16 Slaughter of the Canaanites

April 24, 2017
Q

박사님, 저는 박사님께서 이스라엘 민족에게 가나안 민족의 학살을 명하신 하나님의 명령을 따르는 것이 도덕적으로 옳다는 점을 기반으로 구약의 폭력성을 정당화한다는 것을 들었습니다(가나안 학살을 명하신 하나님께 복종하지 않는 것이 잘못된 것이라는 점에서).
무슬림들이 도덕률을 정의하고, 도덕적으로 의심스러운 행동들과 마호메트의 폭력성을 정당화하는 것과 조금 유사합니다.(무슬림들은 하나님의 의지를 도덕률로 정의합니다.) 박사님께서는 박사님의 구약 폭력성의 정당화와 마호메트와 코란의 폭력적인 구절들에 대한 이슬람 교도들의 정당화에 무슨 차이가 있다고 보십니까? 도덕적으로 의문이 드는 행동들과 코란의 구절들의 폭력성이 무슬림들과 대화할 때에 좋은 주장인가요?
-익명-

Dr. craig’s response


A

크레이그 박사의 답변 :
모세오경에 따르면,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들의 이집트의 노예제도에서 건져 내시고 그들의 조상들의 땅으로 부르셨을 때, 하나님은 그 땅에 살고 있던 가나안 민족들을 학살할 것을 명령하셨습니다.
(신명기 7:1-2 , 20:16-18) 그 학살은 완전해야 했습니다. : 모든 남자, 여자, 그리고 아이들까지도. 여호수와에서는 가나안 땅에서 하나님의 명령을 실행하는 이스라엘 민족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이런 역사들은 우리의 도덕적 감성을 건드립니다. 그러나, 반어적으로, 서구에서 우리들의 도덕적 감성은 무의식중에 많은 사람들에게 유대교-그리스도인 문화에 의해 크게 영향을 받았습니다. 이 문화는 인간의 본질적인 가치와, 변덕스럽기 보다는 공정하게 대처하는 중요성과, 그 죄악 어울리는 심판의 필요성을 가르칩니다. 이 역사들이 어기는 것 처럼 보이는 이 가치들을 성경이 심어줍니다.

가나안 민족 학살의 명령은 히브리 성서에 나타난 이스라엘의 하나님, 야훼의 모습과 너무나 달라보이기에 부조화를 이룹니다. 리차드 도킨스와 같은 통렬한 수사법과 반대로, 히브리 성서의 하나님은 연민과 오래참는 공의의 하나님입니다. 우리는 구약의 예언서들을 가난한 자, 억압받는 자, 혹사당하는 자, 고아인 자에 대한 하나님의 깊은 보살핌을 무시하고 읽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공의로운 법과 지도자를 요구합니다. 하나님은 그야말로 심판을 내리지 않기 위해 인간들에게 그들의 죄악들을 회개하라고 애원합니다. (에스겔 33:11 너는 그들에게 말하라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나의 삶을 두고 맹세하노니 나는 악인이 죽는 것을 기뻐하지 아니하고 악인이 그의 길에서 돌이켜 떠나 사는 것을 기뻐하노라 이스라엘 족속아 돌이키고 돌이키라 너희 악한 길에서 떠나라 어찌 죽고자 하느냐 하셨다 하라) (개역개정)

하나님은 니느웨의 이교도 도시조차도, "좌우를 분변하지 못하는 자들" 때문에 불쌍히 여겨 예언자를 보냈습니다.(요나 4:11) 모세오경은 위대한 고대 도덕 법전 중 하나로서 서구 사회를 변화 시켰습니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비난조차도 복수에 관한 방안이 아닌 폭력을 완화하기 위해서 범죄에 상응하는 처벌을 확인하기 위함이였습니다. 하나님의 심판 변덕스럽지 않습니다. 주님께서 소돔과 고모라를 심판하시려는 그의 뜻을 선포 하셨을 때 아브라함은 대담하게 물어봅니다. "주께서 이같이 하사 의인을 악인과 함께 죽이심은 부당하오며 의인과 악인을 같이 하심도 부당하니이다 세상을 심판하시는 이가 정의를 행하실 것이 아니니이까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내가 만일 소돔 성읍 가운데에서 의인 오십 명을 찾으면 그들을 위하여 온 지역을 용서하리라"(창세기 18:25-26)

중동지역의 상인이 흥정을 하는 모습처럼, 아브라함이 계속 기대치를 낮출 때마다 하나님은 그 기대치를 맞춰주시며, 도시에 10명의 의인이라도 있으면 그 열명으로 말미암아 그 도시를 멸하지 않으시겠다는 확인시켜 주십니다.
그렇다면 가나안 민족을 학살하라는 명령을 이스라엘 군사들에게 명하는 야훼 하나님이 무엇을 하고 있는 것입니까? 우리는 야훼 하나님이 긍휼하신 하나님인 동시에 공의롭게 심판하신 다는 점에서 이 이야기들이 이해하기 힘들수가 있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야훼 하나님이 그의 군사들에게 아이들을 멸하라는 명령을 내릴수가 있습니까?
문제는 무엇입니가?
저는 이 문제가 하나님의 존재의 도덕 논증에 대한 반박으로 흔히 제기된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것은 전반적으로 옳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이런 명령을 내릴 수 없다는 언급은 제가 주장한 도덕 논증의 두 전제를 거짓으로 만들거나 흠을 내지 않습니다 :
1. 하나님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객관적인 도덕 가치관은 존재하지 않는다.
2. 객관적인 도덕 가치관은 존재한다.
3. 고로 하나님은 존재한다.
사실, 만약 무신론자가 하나님이 가나안 민족의 몰살을 명령하신 것이 도덕적으로 옳지 않다면, 그 무신론자는 이미 2번 전제를 단언합니다. 그렇다면 문제는 무엇입니까?
제가 보기에 문제는, 하나님이 이런 명령을 내리지 않을 수 밖에 없었다면, 성경의 이야기들은 거짓이여야 합니다. 이런 사건이 일어나지 않았거나, 그저 이스라엘 민족의 민간 전승일 뿐입니다 ; 만약 실제로 일어난 사건이라면, 이스라엘 민족이 하나님이 자신들의 편에 있다는 생각을 바탕으로 이런 잔학한 짓을 명령하신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 국수주의적 열정으로 저지른 사건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실제로는 명령하지 않으셨음에도) 다른 말로 하면, 이 문제는 성경 무오설에 대항하는 문제입니다. 사실, 많은 구약성서 비평론자들은 가나안 학살이 실제로 일어난 사건이라는 것에 의문을 가집니다.
그들은 로마를 건국한 로물루스와 레무스의 미신과 같은 이야기처럼 이 이야기들이 이스라엘 건국의 전설과 같은 이야기로 받아들입니다. 비평가들에게 하나님께서 이런 명령을 하신 이유는 증발해버립니다.
그렇다면 이 문제는 다른 관점에서 바라보아야 합니다. 성경의 무오설은 중요한 문제이지만, 하나님의 존재나 성자 하나님의 위격과 같은 문제와는 다릅니다. 우리가 기독교인으로서 이 문제에 대해 좋은 대답을 내놓을 수 없고, 하나님의 이러한 명령이 하나님의 선하신 성품과 불일치를 보인다면, 우리는 성경 무오설을 포기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불신자가 이 문제가 야기하는 것 보다 더한 문제를 생각하게 하면서 이 문제를 벗어나게 해서는 안됩니다.

이 문제를 바라볼 때 좋은 시작점은 우리의 도덕적 판단에 기저가 되는 윤리 이론을 다시 살펴보는(말하는) 것입니다. 제가 변호한 신적 명령 윤리의 형태에 따르면, 우리의 도덕적 의무는 신성하고 사랑의 하나님의 계명으로 구성됩니다. 하나님이 자신에게 계명을 내리지 않기 때문에, 그는 지킬 도덕적 의무가 없습니다. 하나님은 당연히 우리처럼 도덕적 의무와 금지를 조건으로 하지 않습니다. 에를 들어, 저에게는 무죄한 생명을 가져갈 권한이 없습니다. 제가 그런 행위를 하는 것은 살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는 그러한 제한이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가 선택한 대로 생명을 주고 가져갈 수 있습니다.
우리는 모두 "하나님 노릇을 하며" 생명을 가져가려 하는 어떠한 권위를 고발 할 때 이것을 알아챕니다. 인간 권위는 하나님께만 속하는 권한을 사칭하며 자신에게 그 권한을 부여합니다. 하나님께는 제 생명을 늘려주실 그 어떠한 의무 아래 있지 않습니다. 만약 하나님이 저를 지금 죽이시기 원한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특권입니다.
이것이 의미하는 것은 하나님이 가나안 민족의 생명을 올바른 때에 가져가실 권한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들이 얼마나 오래 살고 언제 죽는 문제는 하나님께 달려있습니다.
그래서 문제는 하나님이 가나안 민족의 생명을 가져갔다는 것이 아닙니다. 문제는 하나님이 이스라엘 군대에게 그들의 생명을 앗아가라고 명령하셨다는 것입니다. 이는 어떤 이를 살인하라고 명령하는 것과 같지 않습니까? 아니요, 아닙니다. 오히려, 우리의 도덕적 의무는 하나님의 명령에 의해 결정되기 때문에, 하나님의 신성한 명령 없이 누군가에게 무엇을 하라고 명령하는 것 자체가 살인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명령의 선하심을 따른 이스라엘 군대에게 이 살인이라는 행위는 도덕적으로 의무인 것이였으며, 그들의 동기로 이 살인이라는 행위를 저질렀을 경우에만 잘못 된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신적 명령 이론에 따르면, 하나님께는 어떤 행위를 명할 권한이 있는데, 이 명령 없이는 죄 였을 행위가, 그 명령이 있었기 때문에 도덕적으로 의무인 행위라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그렇지만, 이러한 명령은 하나님의 성품과 반대되지 않습니까? 이 사건을 더 자세히 살펴봅시다. 어쩌면 아훼 하나님의 소돔 도시의 파괴의 이야기가 의미를 가지는 것은, 아훼 하나님의 가나안 점령과 도시들을 파괴하라는 명령의 배경이 된다는 점에서 입니다. (아브라함이 소돔에 열명이라도 의인이 있다면 그 도시들은 파괴되지 않을것이라는 침통한 확언과 같은 맥락에서)
이것이 암시하는 것은 가나안 민족은 의인이 아니며, 그렇기에 하나님의 심판 아래에 떨어진 것입니다.
사실, 이스라엘 민족이 이집트의 노예가 되기 이전,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여호와께서 아브라함에게 이르시되 너는 반드시 알라 네 자손이 이방에서 객이 되어 그들을 섬기겠고 그들은 사백 년 동안 네 자손을 괴롭히리니 그들이 섬기는 나라를 내가 징벌할지며 그 후에 네 자손이 큰 재물을 이끌고 나오리라 너는 장수하다가 평안히 조상에게로 돌아가 장사될 것이요 네 자손은 사대 만에 이 땅으로 돌아오리니 이는 아모리 족속(가나안 무리 중 하나)의 죄악이 아직 가득 차지 아니함이니라 하시더니" 라고 말씀하십니다.

생각해 봅시다! 하나님은 가나안 조속아 견딜 수 없을 정도의 타락함에 다다르지 않았기에 심판을 400년이나 미루십니다. 이것이 히브리 성서에서 우리가 아는 오래 참으시는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은 가나안 무리들을 심판하기에 적합할 때까지 그가 선택한 민족이 4세기 동안 노예로 살게 하신 뒤 그의 민족을 이집트에서 불러내십니다.
심판의 때에, 가나안 문화는 방탕하고 사악했으며, 매춘 의식과 유아를 제물로 받치는 의식들을 행했습니다. 가나안 민족은 제거되어야 합니다: "이는 그들이 그 신들에게 행하는 모든 가증한 일을 너희에게 가르쳐 본받게 하여 너희가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 범죄하게 할까 함이니라"(신명기 20:18)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심판하기 위해 이교도 국가인 앗시리아와 바빌론을 사용하신 것 처럼, 가나안 민족의 심판에 하나님의 공의를 나타내기 위해 이스라엘을 도구로 사용하셨을 뿐이며,가나안 민족을 심판하기에 도덕적으로 충분한 이유들이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왜 죄 없는 아이들의 목숨까지 가져가셨을까요? 이 심판의 무서운 전적 파괴는 의심할 여지 없이 이스라엘의 민족에게 이교도 국가와 동화를 방지하는 목적에 있습니다. 가나안의 완전한 파괴를 명할때에, 하나님은 "또 그들과 혼인하지도 말지니 네 딸을 그들의 아들에게 주지 말 것이요 그들의 딸도 네 며느리로 삼지 말 것은 그가 네 아들을 유혹하여 그가 여호와를 떠나고 다른 신들을 섬기게 하므로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진노하사 갑자기 너희를 멸하실 것임이니라"(신명기 7:3-4)

이 계명은 복잡한 유대교 의식의 중요한 전체 구조 중 깨끗하고 더러운 의식을 구분합니다. 동시대의 서구적 사고방식에게 구약 성서의 게명들은 완전히 특이하고 의미없게 느껴진다 : 섬유와 털을 섞지 말것, 유제품과 육류를 같은 그릇에 사용하지 말것, 등등. 이 규정들의 가장 우선시 되는 취지는 다양한 종류의 섞임을 막는 것이다. 이 차이의 뚜렷한 선이 그어져있습니다 : 저 것이 아닌 이것(This and not that) 이 뚜렷한 선들은 이스라엘 민족에게 하나님에게 특별한 민족이라는 것을 매일 매일 명백하게 상기시키도록 합니다.
저는 하루 인도의 선교사와 서구의 사고방식의 혼혈에 대해 고질적인 성향성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습니다. 그는 복음을 들은 힌두교 신자는 웃으며 "모두는 하나다, 사입, 모두는 하나다!(Sub ehki eh, sahib, sub ehki eh!)" (사입 : 특히 과거 인도에서 사회적 신분이 어느 정도 있는 유럽 남자에 대해 쓰던 호칭 (네이버 사전))(저의 음역을 용서해 주십시오!)라고 말한다고 합니다. 그들에게는 논리적인 모순조차 전체로 포괄되기 때문에 그들에게 다가가는 것 조차 불가능 했습니다. 그(인도의 선교사)는 하나님이 이스라엘 민족에게 깨끗한 것과 깨끗하지 않은 것에 대해 너무나 많은 제멋대로인 계명들을 준 이유가 모순의 법칙에 대해 가르치기 위해서라고 말했습니다.
이러한 강력한, 어쩌면 가혹한 이분법을 통해 하나님은 이스라엘에게 이교도 우상과의 어떠한 섞임도 용납할 수 없다는 것을 가르치셨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의 영적인 건강과 후대를 보존하는 그의 방식이였습니다. 하나님은 가나안 유아들이 살아남는다면 그들이 이스라엘의 파멸이 되는 길을 가져올 것이라는 것을 아셨습니다. 가나안 유아들의 학살은 가나안 민족의 신분과 섞임을 막았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과 따로 떼어지는 충격적인 유형적 예증이 되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제가 믿는 것처럼, 우리가 유아나 어린 아이들이 죽을 때 하나님의 은혜가 그들에게까지 확장된다고 믿는다면, 이 아이들의 죽음은 그들의 구원이였을 것입니다. 우리는 너무나 자연주의적이고 세상적인 관점에 메여있는 나머지 죽은 이들은 천국의 비교할 수 없는 즐거움을 위해 기꺼이 이 땅의 죽음을 받아 들인다는 것을 잊어버립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아이들의 목숨을 앗아가는데 잘못 인도하신 것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이 가나안 학살의 명령에 있어서 누구를 하나님이 잘못 인도하는 것일까요? 가나안 민족의 어른들은 아닐것입니다. 그들은 타락해서 심판을 받아야 했습니다. 아이들도 아닙니다, 그들은 영생을 받았을 테니까요. 그렇다면 누구를 잘못 인도 했을까요? 모순되는 이야기지만, 저는 이스라엘 군대 자신들에게 명백히 잘못된 인도하심이 있었다는 점이 이 문제에서 가장 어려운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집에 무단침입해 겁 먹은 여성과 아이들을 죽이려 한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상상할 수 있습니까? 이스라엘 군대에게 준 끔찍한 영향은 충격적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이 문제를 기독교화된, 서구적 생각의 관점에서 바라보고 있습니다. 고대 세계의 사람들에게 삶은 이미 잔인했습니다. 고대 근동 지역에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폭력과 전쟁은 이미 삶의 한 부분이였습니다. 이 사실의 근거는 이 이야기를 전하는 사람들은 이스라엘 군대에게 명령된 이 행위가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했다는 것입니다. 가나안 민족을 죽여야만 했던 군사들 위로 그 누구도 손을 내밀지 않았습니다.(손을 내민 자들은 국가적 영웅이였습니다.)
더욱이, 위에서 주장한 저의 요점으로 다시 돌아갑니다. 하나님만을 위해 부름 받는 민족으로서 그 무엇도 이스라엘 백성들을 설명할 수 없다. 아훼 하나님은 하찮게 볼 수 있는 존재가 아닙니다. 그는 진지하며, 이스라엘 백성들이 배신한다면, 똑같은 일이 그들에게 일어날 것입니다. C.S. Lewis 가 말하길, "아슬란은 길들어진 사자가 아닙니다."
그렇다면 이것은 이슬람의 Jihad 와 어떻게 연관됩니까? 이슬람교는 폭력을 무슬림 신앙을 지지하는 수단으로 여깁니다. 이스람교는 세계를 두 분류로 나눕니다: 다르 알 - 이슬람(dar al-Islam: 이슬람의 집) 과 다르 알 합(dar al-harb : 전쟁의 집). 전자는 이슬람교에 순종하도록 된 땅이며, 후자는 아직 순종하지 않는 땅입니다. 이것이 이슬람이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입니다!
반대로, 가나안 정복은 이들에 대한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으로서 대표됩니다. 목적은 그들을 유대교로 회심하게 하려는 것이 전혀 아니였습니다! 전쟁은 유대교 신앙을 지지하는 도구로 전혀 쓰이지 않았습니다. 더욱이 가나안 대학살은 희한한 역사적 사건으로서 대표되지, 그 행동에 대한 정상적인 방법이 아닙니다.
이슬람의 문제는, 그렇다면, 그들이 옳지 않은 도덕 논증 이론을 갖고 있어서가 아닙니다 ; 문제는 잘못된 하나님과 있다는 것입니다. 만약 무슬림이 우리의 도덕적 의무가 하나님의 명령에 의해 구성된다고 한다면, 저는 그에 동의합니다. 그렇지만 무슬림과 기독교인은 하나님의 성품과 관련해 극단적으로 차이가 있습니다. 기독교인은 하나님이 모두를 사랑하신다고 믿는 반면, 무슬림은 그들의 하나님이 오직 무슬림만을 사랑한다고 생각합니다. 알라는 불신자와 죄인에게 어떠한 사랑도 갖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을 부자비하게 죽일 수 있습니다. 더욱이 이슬람교의 알라의 전지전능함은 그의 성품을 포함한 모든 것을 능가합니다. 알라는 그래서 인류를 대하는 방법에서 전적으로 독단적입니다. 반면 기독교인들은 하나님의 거룩하고 사랑하는 성품이 그가 명령하시는 것을 결정한다는 입장을 가집니다. 질문은 누구의 도덕 이론이 맞냐는 것이 아니라, 어떤 하나님이 진짜 하나님인가 입니다!

- William Lane Craig